Fantastic Poem on the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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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ssi Berg & Oded Graf | 춤추는 시F.OUND ISSUE > #03 November, 2010   by F.OUND / 2012.03.09

에디터 > 나하나   포토 > 김희언   Yossi Berg & Oded Graf

Fantastic Poem on the Stage

춤추는 시

요시 베르그와 오뎃 그라프는 무용수이자 안무가이다. ‘이스라엘 무용계의 별’이라 불리는 이들은 지난해 세계적인 무용전문지 <발레탄츠(Ballettanz)>의 ‘주목할 만한 안무가’로 선정됐고, 일간지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로부터 “관객들에게 순도 높은 기쁨을 안겨주는 매우 뛰어나면서도 응집력 있는 작품을 만드는 안무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들을 만난 건 아니었다. 다만 한 편의 ‘환상적인 시(詩)’를 닮은 그들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었다.

지난 10월 9일,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요시 베르그와 오뎃 그라프의 작품 <어느 더운 나라의 정비공 트리오>(이하 <정비공 트리오>)와 <네 남자, 앨리스, 바흐 그리고 사슴> (이하 <네 남자>)을 보면 몇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과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미란다 줄라이의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윤성호의 <은하해방전선>. 재기발랄한 판타지와 음침한 판타지가 충돌하고, 따스한 유머와 낄낄대는 농담이 공존하며, 절제된 긴장과 풍부한 감정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함축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건 단연 몸짓이다. 일상적인 동작 같기도 하고, 막춤 같기도 하고, 때론 요가, 체조를 떠올리게 하는 움직임은 무대 위에서 절도 있게 그리고 빠르게 전개된다. 마치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변검술처럼 말이다. 이제 막 한국에 도착한 요시 베르그와 오뎃 그라프는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배우고 있었다. 그들과의 인터뷰는 그들의 작품과 다르게 단 한 차례의 큰 소리 없이 조근조근 진행됐고, 그들의 작품처럼 진지하면서도 사색적인 대화들이 차근차근 오고갔다.

<어느 더운 나라의 정비공 트리오>

작품을 보면 솔로 동작보다 2~3명이 함께 하는 동작들이 돋보여요.

요시 베르그(이하 요시). 2~3명으로 이루어진 동작들이 많긴 많죠. 사람 사이의 신체적인 실험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걸 거예요. 저희들은 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거든요.

오뎃 그라프(이하 오뎃). <네 남자>의 경우 오늘날을 사는 네 남자들의 관계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두 남자의 관계와 다른 두 남자의 관계, 세 남자 그리고 네 남자의 관계는 각각 다르잖아요. 그 관계에 대해 연구했죠. <정비공 트리오>도 마찬가지에요. 세 남녀의 몸이 맞닿는 동작들이 많아요.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죠.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의존하는 관계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동작들이 1초에 한 번씩 바뀌어요. 쉽지 않은 동작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던데 연습할 때 정말 힘들 거 같아요.

요시. 작품을 준비하면서 힘든 순간들이 있어요. 빠르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거든요. 의도적으로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니에요. 우리의 작품들이 주로 오늘날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빠른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거 같아요.

사람과의 관계, 오늘날의 삶이라는 주제를 판타지적인 요소와 연결시켜 표현하고 있어요.

오뎃. 무대라는 공간 자체가 판타지적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캐릭터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놓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에 대한 답을 찾을 수도 있고, 그 상황을 표현할 수도 있죠. 저는 주로 제가 가고 싶은 세계, 갖고 싶은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해요. 현실 세계보다 더 큰 꿈을 꾸는 세계 말이에요.

요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반드시 하나의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터넷만 해도 그래요. 또 다른 현실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죠. 이스라엘 텔아비브(Tel Aviv)에서 살던 제가 서울이라는 전혀 다른 공간에 놓인 지금 또 다른 현실에 도착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웃음)

<네 남자>는 판타지의 극한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가면을 쓴 남자들이 등장하고, 대사와 노래 등이 삽입되어 있어 무용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게 만들죠.

오뎃. 텍스트 혹은 움직임이라고 결론짓고 싶지 않았어요. 장르를 넘어 다양한 것들을 표현하고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네 남자>는 ‘한 남자 되기’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고, 연구와 연습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됐죠.

요시. 오늘날의 사회에는 우리가 지켜야하는 규칙이나 문화적 코드 같은 것들이 많이 존재해요. 그리고 때때로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본능, 본성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어요. 네 남자가 쓰고 있는 가면이 우리 안에 내제되어 있는 본능과 연결되는 고리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
흥미로웠던 건 Yes를 외치는 남자와 No를 외치는 남자가 몸을 부딪치면서 여러 개의 단어들을 쏟아내는 장면이었어요. Yes와 No가 Love가 되고, 또 숨소리로 변하고, 어느 순간 개 짖는 소리로 변하는 식이에요. 일종의 언어유희예요.

요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건 아니에요. 연습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단어가 들어가게 됐는데 작품의 맥락과 너무 잘 맞는 거예요. 그래서 사용하게 됐어요. 움직임과 만나면서 변형되는 모든 단어들은 작품의 주제와 연결되어 있죠. 두 남자의 관계를 드러내기도 하고, 더 넓은 의미에서 나와 다른 구성원의 관계를 드러내기도 하죠. 특히 Yes와 No는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단어에요. 흑백의 의미일 수도 있고, 음과 양의 사상일 수도 있죠. 삶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요.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오뎃. 오늘 이런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질문을 받다니 신기해요. (웃음) 가장 중요한 건 같이 작업을 하는 무용수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많은 작품들이 무용수들과 협업을 통해서 탄생되기 때문에 서로 발전하고 격려할 수 있는 관계가 가장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관계를 잘 맺고 있는 거 같아요.
(왼쪽부터) 오뎃 그리프, 요시 베르그

5년째 공동 안무를 하고 있어요. 잘 맞으니까 같이 하는 거겠죠?

오뎃. 5년의 시간을 겪으면서 서로에게 정말 좋은 파트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부족한 부분은 요시가 채우고, 요시가 부족한 부분은 제가 채우면서 하나의 무언가를 완성해나가고 있죠. 그리고 이제는 언제 자리를 내어주고, 언제 자리를 채워야하는지 너무도 잘 알아요. 그런 좋은 관계가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는 거 같아요.

요시. 때때로 의견 다툼이 있기도 하지만 상당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요. 서로에게 큰 선물인 셈이죠. (웃음)

무용수로 활동하다 안무를 시작했는데, 혹시 창작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나요?

요시. 갈증 때문은 아니에요. 바체바 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할 때 우연히 바체바 앙상블을 위한 안무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우연히 시작하게 된 건데 안무를 하나씩 완성해 나갈 때마다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하게 됐어요.

오뎃. 저 역시도 우연히 하게 됐어요. 코펜하겐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단스 솔루션’이라는 안무 경연대회가 열렸어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도전했는데 1등상을 받았어요. (웃음) 이후 좀 더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계속하고 있어요.

무용수로 무대에 서는 것과 안무가로 무대에 서는 것은 다를 거 같아요.

오뎃. 제가 안무를 맡은 작품에서 춤을 출 때는 편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이 작품에 대해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에 반해 다른 안무가의 작품에 무용수로 서게 되면 안무가의 지시대로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죠. 그런데 최근 2년 동안 다른 안무가의 작품에 출연한 적이 없어서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겠어요.

요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다 라고 정의 내리기 힘들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제가 안무한 작품의 무대에 설 때의 충족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거예요.

꽤 오랫동안 무용가로 살아왔는데 무용의 매력은 뭔가요?

요시. 몸을 통한 표현. 평소에도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무대에서는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나의 몸, 나의 생각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을 표현하죠. 그런 과정이 행복해요.

오뎃. 일상에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어요. 몸은 움직이고 있는데 마음은 움직이지 않거나, 마음은 움직이고 있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 그것이 무용이 아닐까 생각해요.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걸 주고 싶어요?

요시.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건 아니에요. 창작자로서 욕구에 의해 만드는 거죠. 어떻게 탐구하고, 표현하느냐 늘 고민하죠. 그리고 또 한 가지, 한 발 물러서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보려고 해요.

내가 궁금한 건 관객들이 요시와 오뎃의 작품을 보고 어떤 감흥을 느꼈으면 좋겠느냐는 거예요.

요시. 아… 관객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등등이요.

오뎃. 우리들의 작품을 본 관객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삶을 뒤돌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 삶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어떤 모습일까? 이런 질문들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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